노아가 글쎄

디테일의 함정 1 본문

담백하게 일만 잘하기

디테일의 함정 1

슈퍼노아 2023. 3. 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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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ist,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전문가'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보통 회사에서의 Specialist는 실무자를 뜻하고, 사원에서 대리 정도를 의미한다. Specialist로서의 덕목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디테일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실무자급을 채용하는 면접에서 많이 질문하는 내용 중 하나가 '디테일에 강하냐'는 질문이다. 실제로 디테일 없는 실무자는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할 뿐만아니라, 남들의 공격을 당하기 일쑤이다. 그렇다고 디테일한 것이 반드시 혹은 항상 좋기만 한 것일까. 어느정도까지 디테일 한 것이 좋을까. 이에 대한 정답은 모르지만, 경험상 디테일에도 함정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기안서를 작성한다. 

큰 돈이 나가는 기안서이기에 더욱 신경을 쓴다. 회사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고,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하기에 꼭 승인을 받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목적, 개요, 투자금액, 용도, 가치 등 각종 정보들을 꼼꼼히 기록하여 상급자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질문들에 대해 철저히 기록하고, 기안상 표현되지 않는 것들은 구두 질문에 대비해 답변을 준비한다. 기안이 상신되고 전자결재 시스템 상 '읾음'으로 표시가 됐는데도 결재가 안 떨어진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여전히 '읾음'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바빠서 잊으셨나' 라는 생각에 직접 찾아가 결재를 부탁 드린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때부터 질문이 시작된다. 꼼꼼하게 기록한 내용들이 오히려 더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고, 질문의 꺼리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대답을 하면 할 수록 더 디테일한 부분들에 대한 질문이 되돌아온다. 그러다 답변을 못하게 되는 질문들이 많아지고, 결국 '확인해서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돌아나오고 만다.

 

그러다가 TMI 생성하게 된다.

다시 보고드리겠다고 하고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논지에서 어긋나거나 쓸데없는 얘기까지 하게 되는 실수를 자주 범하게 된다. 보고자 입장에서는 더욱 잘 보고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지만, 이것을 승인받기 위해 정보를 확인해야 했고, 그 분야의 전문가와 식사를 한 번 했는데 사람이 좋고 똑똑해서 신뢰가 됐고, 타회사에서 사용하는 것을 들어보니 좋더라 라는 등등의 TMI까지 튀어나오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다면, 상급자에게 욕을 먹고 심지어 큰 소리를 듣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결국 디테일에 발목을 잡힌다.

기안을 승인받는 일이 무산된다. 어쩌면 승인받고자 한 내용은 상급자도 필요한 것이고 가치있는 것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무자의 부족한 모습에 승인을 해주는 것이 위험부담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그것이 큰 돈을 지출해야 하거나 더 높은 상급자에게까지 보고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승인을 하는 것이 더욱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나 역시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고, 이런 경험으로 큰 교훈을 얻었었다. 어쩌면 일 좀 한다는 사람들, 성실히 일을 한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겪게 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성실하지 않으면 디테일까지 챙기기가 쉽지 않으니까. 이런 성실한 사람들은 이제 디테일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모든 디테일은 확인하되,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는 지혜, 디테일을 굵직한 선으로 잘 녹여내는 지혜, 그래도 반드시 별도로 가져가야 하는 디테일이라면, 큰 줄기와 조화롭게 표현하는 지혜. 경험이 어느정도 쌓여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성실한 사람들이 그의 성실함을 더욱 더 빛나게 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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