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틈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 9장. 선택 가능성의 조건들
제한된 현실 속에서 여지를 만드는 힘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조건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환경, 몸의 상태, 사회적 제약, 교육과 경험—all of these shape us.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전혀 선택할 수 없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제약 속에서도 어떻게 선택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는가이다.
1. 환경적 조건
누구나 동일한 출발선에서 인생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안정된 가정과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자라지만, 누군가는 가난과 불안 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환경이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가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환경 외에도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언가가 바로 ‘의식’이다. 내가 처한 환경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고자 하는 의식적인 태도는, 같은 조건 속에서도 다른 삶을 만들어낸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진 못하더라도, 한 걸음 다른 방향으로 디딜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한다.
2. 신체적·정신적 자원
피로하거나 아플 때, 우리는 평소처럼 생각하거나 선택하지 못한다. 신체적 컨디션, 정신적 안정감, 수면의 질, 심리적 회복력—all these matter. 자유의지는 의식의 힘이기도 하지만, 에너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기 돌봄과 회복이 중요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우리는 감정에 덜 휘둘리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결국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3. 관계와 사회적 지지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관계는 우리의 선택에 큰 영향을 준다. 지지받는 환경 속에서는 도전이 가능해지고, 비난받는 환경에서는 방어적인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지지하는 말 한마디, 믿어주는 눈빛, 나를 기다려주는 태도는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반대로, 끊임없는 비교, 강요, 무시는 우리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기존의 자동반응으로 되돌려 놓는다.
4. 시간과 여유
선택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무언가를 느끼고 곱씹을 시간, 떠오르는 감정을 바라볼 여유가 없을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여유는 단순히 바쁜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스스로에게 숨을 고를 틈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자유의지는 절대적인 힘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 속에서 작동하며, 그 조건들은 언제나 우리를 제한하거나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조건 속에 있는가?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여지를 발견하고 있는가?
선택 가능성은 때로 조건의 변화에서 오기도 하지만, 더 자주 우리의 인식과 태도에서 비롯된다. 의식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것, 나를 둘러싼 조건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 그것이 선택의 여지를 만들어 낸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조건들을 넘어서, 종교적 사유 안에서 자유의지를 어떻게 바라보아 왔는지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